2012년 9월 18일 03시 18분.

지금 막 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눈도 못 뜬채로 분만실이 떠나가라 울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우는 것이 바로 저런 거구나 싶을정도로. 정말 팔과 다리 온몸을 웅크리고 울고있습니다.

 

아기가 겪은 이 세상. 아니 이 우주는 제 뱃속이 전부였을테지요.

지난 9개월간 아기가 편히 있었을 제 뱃속. 어두컴컴하고 물로 가득했던...

좁은 산도를 지나 갑자기 맞딱드린 이 세상은 아기에게 얼마나 낯설까요.

갑자기 빛이 비치고. 생경한 공기의 느낌에 아기는 당황스러웠겠지요. 어쩌면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그 낯섦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기.

아기가 제 배 위에 올려졌을 때.

제 심장소리를 들으려는지. 귀를 제 가슴팍에 갖다대고 제 몸에 찰싹 달라붙으려고 할 때.

 

저는 이 아기를 보호하고싶어졌습니다. 이것이 모성애겠지요. 

코끝이 찡했습니다.

내 뱃속에서 한 생명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비로소 태어났구나.

 

갓 태어난 아기는 사실 병원균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아기는 엄마 몸 속에서 균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봤기 때문에, 몸에 균을 막아낼 '창과 방패'가 전혀 없습니다.

맨몸으로 무작정 전쟁터에 나간 셈이랄까요. 아기의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엄마는 출산하면서 그리고 출산 직후, 아기에게 '창과 방패'를 선물합니다. 



#1. 산도를 통과하며 유익한 박테리아 섭취하는 아기

 

먼저 엄마는 아기를 낳을 때 아기에게 일종의 '예방주사같은 것'을 놓게 됩니다.

출산에 임박한 엄마의 질 속에는 유산균이 삽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몸에 좋은 유산균!


출산하는 아기는 엄마의 질을 통과하면서 유산균과 만납니다. 양수가 터지면 질벽에 살던 유산균과 양수가 섞입니다. 아기는 산도를 통과하면서 이 액체를 먹어요. 유산균이 입->위를 지나 장에 정착하게됩니다. 특히 갓 태어난 아기는 위에 위산이 없어 유산균이 파괴되지 않고 장까지 아주 잘~간답니다. 


이것이 엄마가 선물한 1차 방어막입니다. 

 

현미경으로 장 속을 보면, 이렇게 이쁘게 보입니다. 보라색, 초록색 구조물들이 장을 건강하게 지키는 균들입니다. 아기들도 생후 1년동안 장 속에 유익균을 최대한 많이 채우기위해 열심히 먹지요! /출처: 2012, Charles Bevins laboratory


우리네 세상엔 세균,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득실득실합니다.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을뿐. 인간은 창과 방패를 이용해 이 미생물들과 상부상조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첫 손님인 아기는 이게 불가능하지요. 만약 창과 방패가 없다면 순식간에 해로운 박테리아가 아기의 깨끗한 장을 선점할 겁니다.


만화에서든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착한 놈보다 나쁜놈이 힘이 쎄고 재빠르죠....

 

이 때문에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질 속 박테리아의 종류, 밀도 등과 그 특성이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dominguez-bello-et-al-2010-pnas-delivery-method-and-microbiota.p

 

2010년 5월 미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은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의 입, 피부, 장내 미생물을 채취해 분석해보니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의 질 속 박테리아의 종류, 밀도 등과 더 비슷했다는 내용입니다. 

(궁금하신분들 위 첨부문서 클릭)

 

아울러 이 연구논문에 따르면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에게서 엄마의 피부에 사는 포도상구균이나 병원에 많은 균이 주로 검출됐다고 합니다. 

배를 열고 아기를 꺼내다보니,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아기 머리가 좁은 질 속을 통과하도록 힘을 끙끙끙.

전 30년전에 젖먹던 힘까지 모두 내서 힘을 끙끙끙 줬는데.

왜 그렇게 큰 아기가 좁디 좁은 질을 통해 나와야하는지...왜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왔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나봅니다.

흠흠흠...


실제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의 장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에 비해 유익균인 락토바실러스와 비피도박테리아가 더 많이 산다고 합니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면 산도에서 유산균을 못 마셨을뿐아니라 엄마가 항생제를 투여받아 이것이 아기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모유로 두번째 방어막 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젖을 물고 있다. /출처: SINC

출산 뒤 3~7일이 지나서 나오는 모유는 백퍼센트 온전히 아기를 위한 것이 아니랍니다.

아기의 장에 정착할, 그리고 이미 정착해있는 미생물을 위한 것입니다.

이때의 모유에는 모유올리고당(HMO), 카제인단백질, 젖당이 많이 들어있답니다.

그런데 위 성분중 모유올리고당이라는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아기는 모유올리고당을 필요로하지 않는답니다.

그렇다면 모유에 왜 이 성분이 많이 들어있을까요?

바로 아기의 장에 정착할 박테리아의 먹이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모유에는 100여종류의 모유올리고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알려진 비피도박테리아가 모유올리고당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미피도박테리아는 설사를 일으키는 유해박테리아가 장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막는 기능을 합니다.

 

아기의 장까지 생각한 모유의(?) 세심한 배려(?)라고 볼 수 있겠네요.

유해세균이 들어설 위험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 자리에 유익한 세균을 미리 키워놓는 것이지요.

 

모유올리고당은 초유(출산뒤 3일안에 나오는 모유)에 특히 풍부합니다.

초유에는 지방이나 단백질은 적게 들어있고, 대신 항체를 만들고 면역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들이 풍부합니다.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면 초유라도 꼭 먹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것 같네요.


관련된 실험도 한가지 있습니다. 1983년 일본 요시오카 박사 연구팀은 태어난지 일된 아기를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모유를 먹는 아기와 분유를 먹는 아기로 실험군을 나눈 뒤 장내 세균을 분석했답니다.

그랬더니 모유먹는 아기의 장에는 유익한 박테리아(비피도박테리아 등)가 유해한 박테리아(대장균, 엔테로박테리아 등)보다 1000배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 분유를 먹는 아기는 유해박테리아가 유익 박테리아보다 10배정도 많았답니다. 모유에 비피도박테리아를 잘 자라게 하는 성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각주:1]

 

한가지 더 있습니다. 모유 먹일 때 젖꼭지를 비누로 매번 닦지 말라는 주의사항 들으신 적 있지요?

이 말 중요합니다.

엄마 젖꼭지에도 유익한 균이 있거든요. 

아기가 젖꼭지를 물면서 이 균을 같이 섭취합니다.

 

세부적인 메커니즘은 엄마 몸 속 유산균이 백혈구에 들어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젖샘으로 이동하고. 젖에 흘러들어갑니다.

엄마젖을 쪽쪽 빨아먹은 아기는 몸속으로 엄마의 유산균을 섭취합니다.

이 유산균은 아기의 장 속에서 역시나 유해 박테리아의 정착을 막습니다.


아기는 돌 무렵. 성인과 장내 세균 구성이 비슷해진다고 합니다. 

 

역시 모유는 음식 그 이상입니다.

2010년 국제유명저널 Nature는 모유를 가리켜 '엄마와 아기에게 아주 풍부한 기회가 되는 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1. Hajime oshioka/Development and Differences of Intestinal Flora in the Neonatal Period in Breast-Fed and Bottle-Fed Infants/PEDIATRICS Vol. 72 No. 3 September 1, 1983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엄마몸의 재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산부 군것질 단상  (0) 2013.04.20
자식 입맛 엄마 뱃속에서 결정된다  (0) 2013.04.16
엄마의 선물  (4) 2013.04.02
25시간만에 만난 당신  (1) 2013.03.27
임당에서 벗어나다  (0) 2013.03.25
아기가 찾아왔다.  (0) 2013.02.16

Posted by 캔디목